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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시탄 부활과 우라카미 4번째 박해

기리시탄 부활과 우라카미 4번째 박해

 

우라카미의 농민들은 도쿠가와 시대의 혹독한 금교령의 가운데 2백 수 십년간 신앙을 전해왔다. 1865년 3월 17일 오우라 천주당에서 사제와의 상봉을 실현하게 되었다. 이후 많은 이들이 가톨릭 세례를 받은 것을 나가사키 부교소가 알게 되자 우라카미의 신자들을 죄인취급을 하였다.

이를 우라카미 4번째 박해라 한다.

신자들은 죄인처럼 유배를 가게 되었고 이들은 < 신앙의 여행>이라 한다. 1868년 막부시대가 끝났지만 명치정부는 기리시탄의 금지령은 그대로 계속되었다. 우라카미를 비롯하여 오도, 오무라, 사가, 히라도... 까지 비참한 박해는 이어졌다

우라카미의 신자들은 4번째 박해 때 마을 신자전체가 겸손과 온유로 받아들였다. 첫 번 순교자로부터 뿌려진 순교의 씨앗이 신앙의 자유, 언론의 자유, 인권의 보호를 누릴 수 있도록 일본 전 국민에게 주어지는 열매를 맺었다. 비로소 명치정부는 1889년 제국헌법반포로 인하여 세계가족의 일원이 되는 인권의 길을 열었다.